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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공연

스프링 어웨이크닝 in 계원예고

학생 공연을 보는것도, 예고에 가보는것도, 심지어 분당에 가보는것도 처음이였다.
상업 프로덕션에서 프로 배우들이 정식으로 준비해서 올린것이 아님에도 똑같은 감동을 느꼈던 계원예고의 스프링 어웨이크닝.
내가 이 공연을, 이 캐릭터를, 이 음악들을, 이 장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랑했었는지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을 선사하였기에
다른 모든 공연들을 제치고 올해의 공연으로 선정!


올해의 캐릭터

신과함께, 김도빈 자홍.

아무리 생각해도 올해 나를 가장 쎄게 치고 간 캐릭터는 또자홍이 맞는 듯.
그가 등장하여 한번 풀썩 넘어지자마자 난 이후의 내 운명을 직감했고, 공연이 끝나고 나오자마자 홀린듯이 볼수있는 날짜 전부를 예매했다.
그 당시에도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째서 그렇게까지 또자홍에게 쎄게 치였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저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내가 지향하는 어떠한 상태 -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튀지도 묻히지도 않는 - 를
자홍이라는 캐릭터 위에서 배우가 잘 표현해 줬던 것 같다고 생각할 뿐이다.
또자홍에 낚여 배우의 필모를 따라 가다가 보지 않아도 되었을 뮤지컬을 보게되는 참사가 있을 거라고는, 그때는 알지 못했다.


올해의 책

오쓰카 에이지 - 캐릭터 메이커

‘스토리 창작’에 대한 내 생각에 많은 터닝포인트가 되어 준 책.
엄청난 천재적 영감이나 계몽적 사명감 없이 ‘직업적으로’ 혹은 ‘기계적으로’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는 발상 부터
정해진 작법에 소재를 대입하는 것 만으로 그럴싸한 스토리를 뽑아 낼 수 있다는 등 다양한 접근으로
‘스토리 만들기’ 자체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책이였다.
이 책을 시작으로 저자의 다른 번역서들도 죄다 구입했는데 전부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고
조금은 막연하게 느껴질 때가 있던 ‘스토리 창작’이라는 영역에 보다 본격적으로 진입하고 싶은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올해의 포스터

그냥. 내 취향!


올해의 간식

오징어 굿다리

올해로 2년째 나와 거의 매일을 함께하고 있는 오징어 굿다리.
심심할때 하나씩 씹어먹기 딱이고, 은근한 포만감도 있으며, 양과 가격도 적당하다.
기본적으로는 오징어 굿다리를, 매운게 먹고싶을때는 오징어 핫다리를 사곤 한다.
너무 이가 아플때를 제외하고는 내년에도 꾸준히 오징어 굿다리와 함께일거 같다.


올해의 음악

아이유 - 스물셋

멜론 플레이리스트로 알아본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노래는 아이유의 스물셋.
가요에 관심이 별로 없어서 논란(..)이 있기 전에는 이 노래가 발표된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화제의 중심이라 한번 들어 봤다가 중독이 되어버려 계속 듣게 되더라.
논란 요소들을 제외하고 노래 자체로는 ‘스물셋’ 이라는 나이의 특징적 부분을
특유의 미숙함까지도 포함하고 있어 재미있게 느껴졌던 곡이였다.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아 정했어요 난 죽은 듯이 살래요 아냐 다 뒤집어 볼래'


올해의 new

고양이

애완동물과 반려하는 삶을 가질거라고 거의 생각해 본적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고양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생각을 멈출수가 없어진건지 모르겠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고양이와 함께 산 지 2주차.
아직은 모든것이 새롭고 신기하고 당황스럽다.
이 새로움이 익숙함이 될 때 쯤 나와 내 고양이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 진다.
내 생활에 매일의 새로움이 추가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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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자란다, 반드시.


성장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멈추어있던 어리고 성숙한 존재가 필연적으로 성장의 의무를 부여받아 자기 세계를 뚫고 나오는 것을 보는 일을 좋아한다. 내 마음속에 아직도 자라지 않은 부분이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이미 자라나 무성해져버린 내 속의 무언가가 그 때를 그리워 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성장의 순간을 보는것은 나에게 항상 흥미로운 일이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은 최근 접한 이야기 중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성장에 관한 이야기’였다. 연극을 먼저 관람한 후 책을 읽게 되었는데, 연극이 책의 굉장히 사소한 부분까지 재현한 형태인게 흥미로웠다. 책이 ‘크리스토퍼가 사건에 대해 기록한 책’ 이라는 책 속의 책 형식이라면, 연극은 ‘크리스토퍼가 사건에 대해 기록한 책을 대본으로 만든 연극’의 형식으로 극중 책으로 만든 극(?)이라는 약간은 독특한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이 두 방식 모두 이야기 속의 사건을 크리스토퍼가 직접 서술하는 구조로 캐릭터와 상황의 실제감을 높여주어 마치 크리스토퍼라는 아이가 실재하는 듯, 그리고 그 아이에게 일어난 사건들이 현실인 듯 몰입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형식 뿐 아니라, 한밤중에 일어났다고 하는 그 '의문의 사건' 또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크리스토퍼는 은유와 가정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자폐증 소년이다. 옆집 개 웰링턴이 살해된 사건을 크리스토퍼가 책으로 쓰기로 마음먹은 것에서 시작되는 이 이야기는 정확한 규칙과 예측 가능한 상황들 속에서 안정을 느끼며,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모든것을 보는’ 특유의 시선을 가진 자폐아 소년의 마음 속과 그 가족의 이야기, 심지어는 그들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크리스토퍼는 웰링턴을 죽인 범인을 알아내기 위해, 평소라면 절대 하지 않았던 행동들을 하게 된다. 낯선 사람과 대화를 하고, 아빠가 하지 말라는 행동을 부득불 하기도 하면서 이 '책 속 책'의 결말을 쓰기 위해 노력한다. 노란색을 싫어해서 노란 음식에는 붉은 색소를 섞어 먹을 정도로 일정한 규칙에 따라 생활하던 크리스토퍼에게는 모든것이 엄청난 모험인 셈이다. 한밤중에 개에게 일어난 의문의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시작되었던 모험 이야기는, 도중에 크리스토퍼에게 의문의 사건이 일어나는 것으로 규모를 확장한다. 모든것이 통제 가능한 안전한 스윈던의 집에 머물러 있던 크리스토퍼는 더이상 안전하지 않은, 그가 세운 규칙들을 무시하고 과잉된 정보가 범람하는 혼란스러운 세계 런던으로 가게 된다.

거의 모든 종류의 '성장 이야기’에서 아이들은 안전한 곳을 떠나 위험한 곳으로 향하곤 한다. 이 ‘위험한 곳’은 이야기의 장르나 다루는 내용에 따라 무시무시한 괴물의 숲이 될 수도, 험악한 전장일 수도, 지옥불이 들끓는 저승이 될수도 있다. 하지만 이 책 속의 괴물숲은 바로 가장 현실적이고 우리가 익숙하다고 여기는 도시의 풍경들이다. 직접 찾아가서 티켓을 사야 하는 기차역,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가득 태우고 들어오는 지하철, 너무 많은 간판들이 빽빽히 들어차 번쩍이는 거리. 15살 3개월의 자폐증 소년 크리스토퍼에게는 이런 런던이 어떤 괴물의 숲보다 두려웠을 거라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토퍼의 입을 빌어 묘사되는 현실적이고 감정에 치우치지 않는 그 모험의 내용들은, 우리에겐 너무나 친숙했던 이 세상 속에서 자폐를 가진 소년이 그리고 그 가족이 살아가는 방법을 인식하게 하고, 우리가 당연히 모두에게 적용된다고 믿었던 규칙들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 발견을 통해 우리는 '모두가 똑같은 방식으로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는건 당연한 것' 이라는 평범한 진실에 도달하게 되는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모두 다른 각자만의 방식으로 '결국은 자라난다'는 사실에 우리는 새삼스레 감동하게 된다.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직접 책을 결말까지 완성해냈다.
그 사실은 정말로, 그애가 모든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일 것이다.



덧1. 내가 공연을 관람했을땐, 크리스토퍼의 수학 문제 풀이를 다음으로 미루자는 대사로 처리했는데, 요즘은 커튼콜 끝나고 해준다고 한다. 책에는 부록으로 설명 되어 있다. (이해는 불가능) 이 외에도 크리스토퍼가 노란색,갈색을 싫어하는 이유 등등 세부적인 설정이 공연보다 세밀하게 설명되어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공연을 먼저 보고 책을 읽는 순서가 이러한 세부 설정을 더 흥미롭게 받아들일수 있을것 같았다.

덧2. 크리스토퍼는 규칙과 질서를 좋아하고, 이 책의 챕터는 그런 크리스토퍼의 취향으로 인해 소수 숫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소수는 ‘모든 규칙을 지우고 났을 때 남는 수’ 이며, 크리스토퍼는 이러한 소수를 ‘인생과 같다’고 말하고 있다. 크리스토퍼가 이해할수 없다고 했던 ‘아이러니’가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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